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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8-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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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염(老炎) 속에 피어난 가을의 맥박, 입추(立秋)

기사입력 2026-08-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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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대지를 집어삼킬 듯한 35도 이상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하고 매미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악을 쓰듯 악착같다.
 


에어컨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온전한 사유를 허락하지 않는 이 잔인한 계절 속에서 가을이라는 단어는 지독한 현실감 상실처럼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87일 오늘 우리는 달력 한 구석에서 여름의 맹렬한 기세를 꺾는 절기 24절기 중 열세 번째인 입추(立秋)와 조우한다.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 가장 뜨거운 여름의 심장부에서 가을은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시샘하는 늦더위 그리고 계절의 순리

지금 우리가 겪는 지독한 무더위는 사실 가을의 진입을 시샘하는 노염(老炎) 즉 가을에 밀려나지 않으려는 여름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겉보기에는 여름의 독재가 영원할 것 같지만 자연의 시계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흐른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세당(朴世堂)은 저서 산림경제(山林經濟)를 통해 가을의 도래를 다음과 같이 예찬했다.

 

"가을은 모든 산의 단풍이 눈부시고 밤에는 벌레 소리 흥겨우니 어찌 즐겁지 않느냐"

 

이 구절이 품은 격조 높은 낙천성은 단순히 다가올 풍경에 대한 묘사를 넘어 자연의 거대한 순리를 신뢰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다.

 

지금의 땀방울과 헐떡임 뒤에는 반드시 온 산을 붉게 물들일 단풍과 귀를 맑게 해 줄 벌레들의 오케스트라가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이다.

 

일상의 틈새로 스며든 가을의 전령들

무더위에 지쳐 고개를 숙이고 걷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뿐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대지는 이미 가을을 마중 나가고 있다자연이 만들어 놓은 가을의 전령들은 이미 낮은 곳에서부터 소리 없는 혁명을 시작했다.

 

  • 바람의 결: 대낮의 열기가 가라앉은 밤 가만히 창문을 열면 미세하게 결이 달라진 선선한 기운이 피부 끝을 스친다. 습도를 머금은 끈적한 여름 바람 사이로 건조하고 청량한 가을의 숨결이 아주 조금씩 섞여 들고 있는 것이다.

 

  • 낮은 곳의 개화: 아스팔트 틈새와 무심코 지나치던 가로수길 아래에는 코스모스가 수줍게 꽃망울을 사르고 있으며, 민족의 꽃 무궁화가 묵묵히 피어나 뜨거운 햇볕을 받아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강인한 들꽃들이 먼저 가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 대지의 영글음: 농가(農家)의 밭자리로 눈을 돌리면 대자연의 변화는 더욱 명확해진다. 뜨거운 햇살을 정면으로 받아낸 참깨와 고추가 어느새 속을 꽉 채우며 붉고 단단하게 익어가고 있다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이 열매들을 키워내기 위한 대지의 위대한 산통(産痛)이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폭염의 터널 끝에서 만나는 결실
입추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안은 아무리 강한 더위도 흐르는 시간과 자연의 섭리를 이길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다계절의 바퀴는 멈추지 않으며, 지금의 혹독한 계절은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다.

 

올여름 유독 잔인한 폭염으로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홍천군민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입추의 소식을 전하고 싶다.

 

영글어가는 밭의 열매들처럼 이 무더위를 견뎌내며 묵묵히 일상을 지켜내고 있는 우리의 땀방울 역시 머지않아 인생의 가장 풍성한 결실로 이어질 것이다.

 

가을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오늘 밤 우리 집 창가에 머무를 선선한 바람 한 줄기 속에 이미 가을이 와 있다. 다가올 눈부신 계절을 기다리며, 이 마지막 고비를 모두 건강하게 이겨내시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응원한다.

 

김정윤 기자 (hci20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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